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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을 읽은 소감

wehong 2023. 6. 19. 22:38

우리나라에도 오래 전 나온 책인데 이제 읽게 되었다. 원제는 'The Tyranny of Merit'인데, 책 전체에서 'merit' 또는 'meritocracy'가 '능력' 또는 '능력주의'로 번역되어 있으므로 '능력주의의 폭정' 정도가 원제의 의미로 보인다. 번역서 제목인 '공정하다는 착각'은, 원서 제목의 뒷부분인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에 대한 대응처럼 느껴졌다.

 

 

저자는 우리나라 독자에게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마이클 센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개인의 능력에 따라 보상 받고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현대의 시스템은 과연 정의로운 것인가'라는 주제를 다룬다.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미국의 트럼프 선출과 영국의 브렉시트 현상(그는 이 책에서 이를 '포퓰리즘의 반격'이라고 표현한다)이 능력주의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능력있는 자에게 더 많은 보상이 돌아가는 시스템은 현재의 우리에게 익숙하고 일견 합당한 것으로 보이지만, 저자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와 그랬던 것 처럼 해당 명제를 파고들며 과연 그런 것인지 독자가 다시 생각해 보도록 만든다. 저자는, 능력주의적 시스템은 사회의 계층 이동성을 상승시켜 약자에게도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청사진을 대중에게 제시하지만, 그 시스템에서 뒤쳐진 자에게는 동정 받을 수 없는 낙인을 찍고 앞선 사람에게는 도덕적 정당성까지 부여하여, 결국 사회 공동체의 통합을 저해한다고 보고 있다. 능력주의를 합당하게 바라보고 이를 적극적으로 적용해 왔던 미국에서도 계층 이동성 보다는 능력주의 승자들의 특권 세습의 방법으로 능력주의가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 주장을 위해 저자는 미국 대학과 노동계급의 상황이나 미국의 여러 사고들(자유주의, 개신교 정신 등)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능력에 따라 개인이 보상받는 것이 맞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정치적이거나 이념적인 주제는 아닌 것 같다. 저자도 언급하듯이 미국의 정치 주도 세력인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모두가 이 원칙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능력주의라는 이상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실현하느냐의 구체적 적용 방법이 정치 세력 간의 차이점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라인이나 미디어 매체에서 볼 수 있는 이 책에 대한 의견은 긍정과 부정이 나뉘는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세대 간 또는 신념에 따라 극명하게 나누어 지는 것을 보면 이 주제는 한국의 독자에게 정치적이고 이념적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는 것 같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결과에 따라 각 개인의 사회적 위치와 보상이 바뀔 수 있고 바뀌어야 한다고 강하게 믿는 자유주의론 입장의 독자들일수록 저자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편인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문제가 사회 구성원들이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센델이 능력주의가 트럼프 당선과 브렉시트와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는 것과 비슷하게, 이러한 능력주의 반작용이 특정 사회 구성원의 정치적 선택과 여론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문제 제기를 통해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현재 사회의 움직임과 사람들의 기호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 받았다고 생각한다. 저자 주장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 책의 원서 및 번역서에서 인상적으로 본 문구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Those who “saw the beauty of a system in which every young person could go as far as his ability and ambition would take him” easily overlooked “the pain involved for those who lacked the necessary ability,” Gardner wrote. “Yet pain there is and must be.”
그런 직업은 개인이 그의 지역사회에, 그의 가정에, 그의 나라에,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그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도록 해주는 직업입니다. '나는 이 나라를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 있어요. 나는 이 위대한 공적 모험의 참여자에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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