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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닉스의 탄생'을 읽음 본문
과학사(科學史)를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예전에 개인적인 사견으로 감히 '현재의 개인용 컴퓨터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고 생각되는 사건들' 중 하나로 'UNIX 개발'을 꼽았던 적이 있다. 유닉스(Unix)는 현대의 컴퓨터 운영체제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끼쳐, 우리가 현재 매일 사용하고 있는 각종 인터넷 서비스의 지원 장비들,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임베디드 및 모바일 기기, 슈퍼컴퓨터를 포함한 각종 고성능 컴퓨터(HPC), 맥 또는 리눅스 데스크탑 컴퓨터에 그 명맥이 살아 있다.
이러한 유닉스 운영체제는 당시 미국 Bell Labs에서 자체 사용을 위해 개발되었던 것으로, 이 책 '유닉스의 탄생'은 그 당시 개발 현장에 있었으며 일부 유틸리티를 개발했던 '브라이언 커니핸'(이 책에서 그런 발음으로 적혀 있으니 그대로 인용)이 관련된 내용을 적은 책이다.
우리가 속칭 '이야기에 MSG가 뿌려져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재미있게 듣고 읽는 이야기가 있는 반면, 객관적이고 공평하고 정확하게 기술되어 있지만 그 안에서 자극적인 재미를 찾기는 어려운 이야기도 있다. 이 책은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저자인 '브라이언 캐니핸'이 밸 랩 퇴직 이후에도 교수로 재직할 정도로 엔지니어 또는 사이언티스트의 마인드를 가진 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참고로, 그는 한 때 C 언어의 바이블이었던 'The C Programming Language' 책의 저자 중 한 명이다). 객관적 묘사, 조심스러운 어투, 중간에 이제까지의 내용을 요약하고 핵심을 간추리는 스타일, 간략하고 명료하게 말하려는 태도 등은 대학 교수님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혹시 유닉스가 개발될 때 기술적 이슈나 세부사항에 관심있는 IT 개발자라면 이 책에서 원하는 것을 못 얻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책 내용의 포커스가 유닉스가 개발되던 당시 벨 랩의 환경, 개발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그 업적, 유닉스 및 C 언어의 개발 경위에 더 맞춰져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 때 그랬다'는 과거의 회상이 이 책 내용의 중심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전에 읽었던 책과 비교해 보면, 이 책의 내용과 스타일은 리누스 토발즈의 'Just for Fun: The Story of an Accidental Revolutionary' 보다는 스티븐 레비의 'Hackers: Heroes of the Computer Revolution'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 당시의 주변 분위기, 참여자들의 생각들, 진행되어 온 시간적 흐름 등을 기록한 것에 더 가깝다고 느껴진다. 이 책은 켄 톰슨이 자신의 '유닉스 개발기'를 쓴 것이 아니다.
이 책을 읽고, 그동안 혼란스러웠던 AT&T 유닉스와 BSD 및 Sytem V 간의 역사적 사항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BSD가 오리지널 유닉스 코드를 다시 새롭게 작성한 것이라면, BSD를 유닉스라고 부를 때 리눅스를 유닉스라고 하지 않을 이유도 없어 보인다.
awk, sed, yacc, lex 등에 추억이 있는 사용자들은 스토리가 흥미로울지도 모르겠다. 유닉스 유틸리티에 대해서 그 개발자들과 개발 배경 이야기도 다수 나온다.
저자가 벨 랩의 조직 문화에 대해 기술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연구원이 원하는 연구를 임의대로 할 수 있고, 제안서나 분기 보고서도 필요없고, 재정 지원도 너그러웠다고 하는 벨 랩의 문화를 요즘 어느 곳에서 흉내낼 수 있을까 싶다. 그래서 저자가 유닉스와 같은 OS 혁명이 다시 없을 것 같다고 본 이유도 더 이상 이런 문화와 관리를 유지하는 조직이 있을 수 없기 때문으로 생각하는 듯 하다.
번역에 있어서 Wikipedia를 이용한 상세한 역자주 해설이 인상적이었는데, 다만 글 내용 중에 'PL/I가'라고 표기된 부분은 'PL/I이'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PL/I'는 'PL One'으로 읽어야 한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