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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를 읽은 소감 본문
이번에 일독하게 되었다. 소감을 적어 본다.
이 책은 1, 2, 3부 및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부록을 제외한 주요 플롯은 크게 5개의 파트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번째는 주인공 윈스턴이 현실을 관찰하면서 비판적 시각을 갖는 부분, 두번째는 윈스턴이 줄리아와 오브라이언을 만나 일탈과 반역을 꽤하는 부분, 섯째는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는 골드스타인의 책 내용, 넷째는 윈스턴이 고문과 회유를 받으며 고뇌하는 부분, 마지막으로 윈스턴이 본인의 이상을 저버리고 상황에 순응하게 되는 부분이다.
소설에서 작가가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대상은 통제적이며 획일적인 전체주의 체제로 보인다. 소설 속의 개인들은 텔레스크린과 가족 구성원에 의해 감시되고 결혼과 출산이 통제되며 사용하는 언어도 규제 받는다. 더구나 인간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빅 브라더와 당은 사람들에게 증오심을 주입시키고 과거 기록도 임의로 교체하며 '이중사고'와 같은 인간 의식 개조를 시도한다.
주인공 윈스턴은 내적으로 이런 환경에 의심과 불만을 가지고 은밀한 일탈 행위까지 하다가 결국 당의 전복을 꾀하는 '형제단'에 가입까지 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에 붙잡혀 자신의 생각과 사고에 대한 변경을 회유 및 강제 받았을 때 결국 사랑했던 여인에게 자신의 고통을 전가하려는 비인간적 행위를 하게 되고, 이후 순응하여 석방된 뒤에 술로 버티는 비정상적 상태가 되어 버린다. 고문 받던 때 빅 브라더 일당의 비인간성을 비판하고 인간의 정신이라는 가치를 외쳤던 윈스턴이 결국 자신이 살기 위해 사랑하던 사람을 배신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스스로 굴복하고 이전과 같은 삶을 살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소설 중간에 상당한 분량으로 소개되는 골드스타인의 책 내용은 빅 브라더의 과두적 집단주의 만행을 고발하고 상황을 더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그 내용 자체도 사회 구조 모순을 표출하면서 정치적인 색이 강하게 나타나기도 하고 또 그 자체가 새로운 지배체제를 부추기는 것 처럼 보이기도 했다. 후반부 오브라이언의 회유 및 협박의 내용은 대중들에 행해지는 기만에서 장막을 한 거풀 벗겨내어 직설적이기에 광적이고 무섭게 보이기도 한다.
이 소설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아 보이는 문학, 영화, 게임이 여럿 생각날 정도로 독자에게 큰 충격을 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통제된 사회, 인간의 감정이 허락되지 않은 사회, 지배당하는 다수가 불의에 저항하지 못하는 사회 등 많은 설정이 이 작품에게 영감을 얻었을 것인데, 1949년 작인 이 소설은 그런 파생작들 보다 훨씬 더 철학적으로 파고 든 것 같다.
개인적으로 공감이 잘 되지 않았던 다음과 같다
(1) 중년이 된 윈스턴이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고 저항세력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기로 결심하는 것이 공감되지 않았다
윈스턴이 빅 브라더에 대해 의구심과 불만을 품고 있다는 것은 잘 알겠지만, 중년 나이의 그가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고저항에 가담하기로 결심하는 모습이 공감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사회에 불만이 있어도 중년이 되면 힘들고 지쳐 그냥 자기 자리에 안주하고 싶을 것 같으며 그동안 자신의 쌓아온 것들 때문에 희생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윈스턴이 청년이라는 설정이라면 오히려 공감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2) 통제회된 '영국 사회주의' 상황의 묘사에도 여전히 유럽적 낭만이 보였다
텔레스크린으로 사람들이 감시되고 집단활동에 참여가 강제화되는 설정 속에서도, 점심 시간에 아는 사람들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지속근무가 끝나면 먼저 퇴근을 할 수 있다거나 카폐에서 술과 체스를 임의로 즐기는 등의 낭만적인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영국이 사회주의가 되었다는 가정임에도 일상에서 기초적인 프라이버시는 부여된다는 유럽적 생각 때문일까?
(3) 궁핍해야 소수 특권층의 지위가 높아진다는 소설 중의 설명은 틀렸을 수도 있겠다
소설에서는 골드스타인의 책을 통해서 상황의 이면을 대신 설명하는데, 생산된 재화를 소비하지 않고 소모하기 위한 것이 전쟁의 이유라고 하고 있으며, 그 재화를 분배하지 않는 이유는 대중들이 궁핍해야 소수 특권층이 지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20세기 중후반 보다 현재의 전반적인 경제적 부가 증가했지만 양극화는 점점 더 극심해 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그 주장이 틀릴 가능성이 크다고도 볼 수 있겠다.
내용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 의견은 다음과 같다
(1) 기존 번역서가 올바르게 번역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암울한 결말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영국 사회주의(INGSOC)나 오세아니아가 몰락하여 전체주의 통치가 시간이 지난 뒤 소멸되었다고 해석한다고 해도 이 책의 결말이 희망을 띈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고 본다. 왜냐하면 윈스턴과 줄리아, 각 개인이 결국 자신들의 신념을 포기한 채 전체주의 체제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점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비극은 단순히 전체주의적 체제가 거대한 국가를 지배한다는 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저항과 신념이 인간의 연약함과 이기심 때문에 꺾일 수 있다는 것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2) 오브라이언에 대해
처음에는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을 눈여겨 보다가 결국 함정에 빠뜨리는 충성 당원이 아니었나 생각했는데, 관련된 몇몇 구문을 다시 읽어 보니 오브라이언도 결국 윈스턴 처럼 전향하게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련된 원문은 다음과 같다.
‘They’ve got you too!’ he cried. ‘They got me a long time ago,’ said O’Brien with a mild, almost regretful irony.
...
'You have read THE BOOK, Goldstein’s book, or parts of it, at least. ... ‘I wrote it. That is to say, I collaborated in writing it. No book is produced individually, as you know.’
윈스턴이 오브라이언에게 그도 붙잡힌 것이냐고 묻자 오브라이언이 '오래 전에 붙잡혔다'고 대답했으며, 골드슈타인의 책에 대해서는 오브라이언 본인이 쓴 것이라고 밝혔다(공동 집필했다고 정정한 이유는 책은 개인 단독으로 집필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인 것 같다). 이런 내용을 곱씹어 보면, 오브라이언은 골드슈타인의 책을 작성하고 저항 활동을 하다가 결국 윈스턴처럼 체포되어 전향되었고 그 후 윈스턴을 전향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3) 소설 스토리의 비극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 소설 속 스토리의 비극은 단순히 '전체주의에 기반한 국가의 획일적 통제'에만 있지 않고 '부조리에 저항하는 인간이 결국 자신의 냐약한 인간성을 확인하고 굴복'한다는 것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 윈스턴과 줄리아는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을 바꾸지도 못했을 뿐 더러 고결한 저항 정신을 지키며 최후를 맞이한 것도 아니다. 그들의 저항은, 인간이기 때문에 추악하고 나약할 수 밖에 없는 자기 자신들의 모습을 인지하면서 결국 끝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통제된 사회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위험한 행동이 희생을 감수하는 고귀한 정신으로 연결될 때, 저항자들이 결국 인간일 수 밖에 없는 자신들의 모습을 언젠가 확인하게 되면 회의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관련 내용: 영화 '1984' 소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