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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우리들' 소감 본문
이 책을 다 읽었다. 소감을 간단히 적어 본다.
혹자는 조지 오웰의 '1984'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함께 이 소설을 디스토피아를 그린 3대 소설이라고도 한다고 들었다. 읽은 번역서의 뒷면에도 이 소설이 조지 오웰의 '1984'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영향을 주었다고 출판사가 광고하고 있다. 찾아보기로는, 조지 오웰은 '자유와 행동'에서 이 소설을 언급할 정도로 어떤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예상하는데, 올더스 헉슬리는 인정하지는 않았다고 들었다.
두 소설을 먼저 읽고 이 소설을 읽은 입장에서, 이 소설을 읽는 동안 그 두 소설이 많이 떠 올랐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는 명분으로 현재의 관습들이 금지되고 사라진 사회의 모습은 '멋진 신세계'이 그것과 비슷했고, '나'라는 개인 보다 '우리'라는 전체가 먼저라고 주입 받지만 결국 하나의 주체가 그 전체를 통제하는 전체주의적 사회의 모습은 '1984'의 것과 닮았다. 다만 구성원이 대부분이 고민없이 사회를 받아들이는 '멋진 신세계'와 달리 이 소설의 구성원들은 내적인 갈등을 숨기면서 간직하고 있고, 주인공이 사회 구조의 모순을 직시하고 반혁을 꿈꾸는 '1984'와 달리 이 소설 주인공의 반란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에서 시작한다.
이 소설의 제목인 '우리들'은 개인으로서의 '나'와 반대되는 전체주의적 개념으로 보인다. 자유를 행복의 대치점에 있는 것으로 삼는 '단일제국'은 개인보다 개인들이 조직화된 전체만을 의미 있는 대상으로 규정한다. 이 소설은 전체의 구성원으로서만 살던 주인공이 불가사의한 존재를 만나 격한 감정의 변화 속에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이야기하고도 할 수 있겠다.
소설은 후반부로 갈 수록 읽기 어려웠다. 초반부에는 비교적 간명했던 사건 중심의 서사에서 후반부로 갈 수록 복잡하고 어려운 은유와 상징이 주를 이룬다. 묘사된 표현을 머리 속에서 그려 보는 것 만으로도 매우 힘들었다. 작가의 의도인지 모르겠는데, 주인공이 '영혼이 생성된다는 병에 걸린 후' 부터 글이 급속하게 난해해 지고 혼란스러워 진다. 이런 부류의 소설에 '초현실적인 표현'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타당한지도 모르겠는데, 주인공이 현실을 적고 있는 것인지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애매하다거나 무수한 추상적 개념들의 나열이 무엇인가 상징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작가 자마찐의 약력에 종합기술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공계를 전공한 독자들이 흥미롭게 받아들일 법한 수학 또는 과학 용어와 표현들이 많이 나오며, 그런 개념들을 소설 속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느꼈다. 반면에 문체가 딱딱하지도 않고 문학적 표현들도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작가가 인문학적 소양도 두루 갖춘 것으로 느껴졌다.
소설은 주인공 D-503이 불특정 독작를 대상으로 기록한 일지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는데, 일련의 사건들을 집중적으로 묘사하는데도 불편하고 독자가 소설 내용의 개연성을 느끼기에도 어려운 형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조금의 '개인 시간'만이 주어진다는 소설 내 설정에 따르면, 주인공이 하루 중 그 짧은 시간에 자신의 생각과 사건의 서술을 한다는 것이 납득하기는 힘들었다. 특히 사건의 전말을 당시에 알 수 없는 입장에 있고 자신의 감정도 격한 상태인 주인공이 독자에게 정확하고 분명한 설명을 하도록 하는데 한계가 있어 보였다.
다만, 이런 형식이 소설의 제일 마지막에서 비극의 아픔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가지는 것 같기는 하다. 상태가 바뀌어 버린 주인공이 담담한 톤으로 비극적 상황을 기술하는 마지막 부분이 큰 충격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