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의 여름이 지나갔다. 올림픽 열기 때문인지 아니면 지구 온난화 탓인지는 몰라도 올 여름은 꽤나 무더웠던 것 같다. 추억은 항상 아름답다고들 하지만 맞닥뜨리는 그 순간은 언제나 버겁다. 이번 호에서는 추억을 뒤로 하고 열정을 선택한 필자의 이야기를 준비했다. 가을 문턱에서 차 한 잔에 잠시 나를 돌아보는 여유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김 석 준 sjoonk@gmail.com | 웹2.0과 루비 온 레일스 기반의 소프트웨어 개발, 컨설팅을 하는 유스풀패러다임의 대표이다. 한때 공직에 근무하다 어릴 적부터 해오던 프로그래밍의 맛을 잊을 수 없어 업종을 전환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항상 끊임없이 새로워지려고 노력 중이다. 『프로그래밍 얼랭』,『레일스와 함께하는 애자일 웹 개발』,『레일스 레시피』등의 책을 번역했다.
아이스커피의 계절이 지나갔다. 커피를 좋아하는 필자는 여름이면 주로 진한 에스프레소 샷에 물을 붓고 맑은 얼음을 띄워 만든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긴다. 물론 커피의 품격으로 따지자면 잘 볶아낸 커피 원두를 갈아 드립으로 마시는 수제 커피에 비할까마는, 그래도 에스프레소 커피에는 그만의 고유한 맛과 풍미가 있어 좋다.
필자가 커피를 즐겨 마시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커피가 가져다주는 왠지 모를 상쾌함과 행복감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필자는 진초록의 플라타너스가 창밖으로 넓게 드리워진 도심 속 어느 한적한 커피숍에 앉아 아이스커피 한 잔을 곁에 두고 있다. 그리고 늘 가지고 다니는 작은 노트북을 펼쳐 이 글을 쓰고 있다. 글 쓰는 일은 필자가 좋아하는 일 가운데 하나인지라, 커피를 곁에 두고 글을 쓰는 동안 행복을 느낀다. 간혹 필자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이런 필자의 모습이 무척 자유롭게 느껴져서인지 부럽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필자 스스로 시간을 조절해 가면서, 주말이 아닌 평일에 그것도 사무실이 아닌 커피숍에 앉아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냐고 한다. 그러나 남의 속은 모른다.
가지 않은 길 그런 것 같다. 대개 자기가 가지 않은 길이 좋아 보인다. 인생의 많은 순간에 우리는 이따금씩 두 갈래의 갈림길에 서게 되고, 그 때마다 어떻게든 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그 때 우리의 선택이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말하는 길이었든 아니면 남들이 밟지 않아 낙엽이 조금 더 많을 것 같은 길을 택했든 간에 우리는 각자의 책임으로 하나의 길을 선택했고 그래서 그 길을 가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언제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향수가 남는다. 가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가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길이 더 좋아 보이는 것은 우리 속담에도 나오는 것처럼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한번 생각해 보자. 만약 우리가 그때 그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면 우리는 ‘지금의 우리’보다 더 행복할까? 그건 사람마다 다를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불행히도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정답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 하버드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대니엘 길버트가 쓴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라는 책에 따르면, 우리 인간의 정서적 면역 시스템이 어떤 길을 선택하든 간에 우리를 행복 앞에서 비틀거리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영화 ‘카사블랑카’의 마지막 장면은 아마 누구도 잊지 못할 것이다. 여주인공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카사블랑카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비행기에 올라타 남편과 함께 떠날 것인지를 고민하는 순간, 험프리 보가트는 잉그리드 버그만에게 말한다. ‘우리 모두 당신이 빅토르와 함께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당신은 그의 작품의 일부니까요. 당신이 이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면 아마 후회할 거예요. 물론 오늘은 후회하지 않겠죠. 내일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겠죠. 하지만 곧 후회할 것이고 남은 일생 동안 영영 후회할지도 몰라요.’ … 그러나 버그만이 보가트와 카사블랑카에 함께 머물렀다면 그녀는 걱정했던 것보다는 훨씬 행복했을 것이다. 그 즉시는 아니었을지라도 곧, 그리고 남은 생애 동안 행복했을 것이다.”
자유를 찾아서 행복은 우리 모두가 원하는 가치이자 꿈 중의 하나일 것이다. 크건 작건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가슴 속에 꿈을 안고 살아간다. 그 꿈이 무엇인지는 우리가 누구이고 또 처해진 상황이 어떠한지에 따라 천차만별일 거라 생각되지만, 가끔 주변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꺼내놓다 보면 의외로 비슷한 생각, 비슷한 결론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비록 말 표현과 이유는 다를지언정 결국 우리 모두는 행복을 꿈꾸고 또한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고 싶거나 자기가 하는 일에서 성공을 일궈내기를 원하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 모두가 행복과 자유를 찾기 위한 과정인지도 모른다.
필자 역시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지금은 조금 느슨해졌지만, 한때 필자의 꿈은 오로지 자유롭게 사는 것이었다. 굳이 장자의 ‘소요유(逍遙遊)’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내가 보고 싶은 것들을 보면서 사는 삶을 꿈꾸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뭐니 뭐니 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자유’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부끄럽지만 이쯤에서 필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꺼내야 할 것 같다. 필자에게는 어딜 가든 늘 붙어 다니는 꼬리표가 하나 있다. 이제 10년도 훨씬 지난 오래 전의 일이지만, 필자는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전공을 살려 행정고시를 보았고 제법 우수한 성적을 얻은 탓에 원하던 정부 중앙부처의 공무원으로서 사회의 첫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창 과천 종합청사에서 경제부처 사무관으로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시절을 보내던 어느 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계기가 찾아왔다. 결국 필자는 과감하게 진로를 전환했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도 필자는 틈만 나면 컴퓨터 앞에 매달려 있었고, 집안 책장 가득 꽂혀 있는 컴퓨터 관련 책들이 말해주듯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즐거움을 잊을 수 없었다.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필자의 일기장에는 그 때 필자의 멘토였던 한 선배가 필자의 소식을 전해 듣고 미국에서 보내온 편지가 남아 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에게 맞는 자리가 있나 보다. 언제나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으면 행복해 보이던 네 모습을 떠올리니 네가 있어야 할 자리가 지금 네가 있는 그곳이 아닌가 싶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훌륭하게 성공을 일궈낼 거라고 생각한다. … 네가 갖고 있는 컴퓨터에 대한 열정으로 모든 일을 잘 해나가리라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는 주변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 말들이 더욱 더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어쩌면 가슴 속 한 구석에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아쉬움과 현재의 상황에 대한 미련이 늘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필자 역시 그렇게 해서 ‘좋아하는 일’을 찾아 나선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으니까. 그것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 때문에 가던 길을 에둘러 돌아서….
그래서 지금 어떤가? 그 답은 잠시 뒤로 미루기로 하자. 어쨌든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행복하다. 누군가 음악을 듣거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면 그 사람은 그 일을 할 때 행복을 느낄 것이고, 또 누군가 다른 사람들과 만나 얘기 나누기를 좋아한다면 그 순간 행복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몸을 극한까지 몰고 가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긴다면 그 사람은 그 극한의 순간에 행복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 좋아하는 것이 있고 또 각양각색 다르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공통된 것 같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행복을 느끼는 그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것이다.
프로그래머로서 필자는 프로그래밍을 좋아한다. 특히 새로운 언어나 기술들을 접하고 그것을 적용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필자는 프로그래밍을 하는 동안 즐겁고 행복하다. 특히 요즘은 루비나 파이썬, 얼랭처럼 동적인 언어들 덕에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한달음에 만들어 낼 수 있어 더 즐겁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가끔 배부른 소리라고 한다. 또한 그 ‘좋아하는 일’을 찾는다는 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도 말한다. 아마 독자 여러분도 공감할 것이다. 우리들 중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찾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설혹 진지한 고민을 통해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이 무언지를 찾았다 하더라도, 그게 언제나 변함없이 그대로인 사람은 또 얼마일 것이며 변함없다 하더라도 당장 용기 있게 그 일에 도전장을 내밀 사람은 과연 또 얼마나 될까?
역시 거꾸로 한번 생각해 보자. 그럼 과연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정말 행복할 것인가? 머릿속으로만 생각한다면야 물론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행복할 것임이 분명하다. 어떻게 그보다 더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으랴. 하지만 문제는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데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어리광을 부리면 ‘어른들’은 말한다. 과연 이 세상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고.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지만 모두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는 없다고.
어렵사리 고민 끝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 하더라도 그 다음부터는 또 다른 문제, 즉 ‘현실’이라는 문제가 펼쳐진다. 다행히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생활의 경제적인 면도 자연스레 해결해 주는 것이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대개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과 현실의 생활은 전혀 별개인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오히려 유대인 랍비인 다니엘 라핀이 쓴 『부의 비밀』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흔히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라는 충고를 듣는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말해 건전하지 못한 충고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생활비를 버는 사람은 있다 하더라도 극히 소수이다. 일에 대한 훨씬 더 효과적인 접근 방식은 자기가 직업적으로 하는 일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선택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근거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성공을 원하면 잘하는 일을 하라 성공에 대한 정의는 물론 사람마다,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등의 책을 저술한 짐 콜린스가 말한 성공에 대한 정의, 즉 ‘성공이란 세월이 흐를수록 가족과 내 주변사람들이 나를 점점 더 좋아하게 되는 것’이라는 정의를 좋아하고 또 이를 내 성공의 정의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좀더 ‘현실적인’ 정의들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리가 산속에 들어가 수도승이 되거나 아예 타인을 위해 여생을 바치기로 결심한 성자가 아니라면, 결국 성공이란 자신의 분야에서 충분히 명성을 쌓고 또 돈도 많이 벌어 물질적으로 풍요한 삶을 누리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로 보면 짐 콜린스의 정의가 되었건 아니면 좀더 물질적인 정의가 되었건 간에 성공을 규정짓는 요소에는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이 등장한다. 그게 가족과 내 주변 사람들이 되었건 아니면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나의 가치를 인정해 주고 또 내게 그 가치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이 되었건 간에, 결국 성공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또한 성공이 우리의 목표라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기보다는 정말 잘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결국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나의 가치는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 일을 하는가보다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해줄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될 터이고, 그 때의 일이란 십중팔구 내가 잘하거나 또는 잘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기 때문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이라고는 제대로 한 번 만들어 본 적 없는 한식 요리사가 단지 프로그래밍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 요리사에게 불고기 정식이 아닌 음식점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잘하는 것이 무언지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흔하게는 MBTI 같은 성격 유형 검사를 통해 스스로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를 알아보기도 하고, 통계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도출한 갤럽의 강점찾기(Strength Find) 프로그램을 적용해 보기도 한다. 심지어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애니어그램의 신성함에 의존해서 자신을 찾아보려고도 한다. 그런데 그게 그리 호락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은 내가 정말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었다.
마침 최근에 여기에 도움이 되는 책이 한 권 더 나와 간단히 소개한다.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에서 펴낸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 내 안의 강점 발견법』이란 책인데,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강점을 발견해 내는 여섯 가지의 다른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 산맥타기: 과거의 불행과 고통이 현재의 나에게 준 선물을 찾는다. - DNA 코드 발견: 우리를 비추는 가족이라는 거울에서 공통된 기질을 찾는다. - 욕망 요리법: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속에서 삶에 대한 힌트를 찾는다. - 몰입 경험 분석: 깊이 빠져들어 하게 되는 일을 분석하여 나만의 기질을 찾는다. - 피드백 분석: 그동안 이루어낸 가장 빛나는 성취 속에 녹아 있는 강점을 찾는다. - 내면 탐험: 객관적인 나와 주관적인 나의 만남을 통해 기질을 발견한다.
위에서 소개한 방법들과 비슷한 면이 없진 않지만, 필자가 나름대로 경험을 통해 체득한 방법도 두어 가지 더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자신의 부모님을 관찰하는 것이다. 우스개로 남자가 결혼을 할 때 장모를 보면 아내 될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처럼, 부모가 어떤 성격을 지녔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일을 했으며 또 어떤 일을 잘하는지를 관찰함으로써 자신이 잘 하는 일을 찾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비록 지금은 잘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부모가 잘했던 일이라면 나 역시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아버지가 연예인이면 아들도 연예인이 되는 경우가 많고, 사업을 하는 집안에서 자란 2세가 역시나 사업을 잘 이끌어 내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것도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두 번째는 주변의 지인들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내가 바라보는 나’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나’는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바라보는 나와 남이 바라보는 나는 결코 같지 않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정직하지 못해 그런 것도 아니며, 심지어 오랜 기간 함께 한 가족이나 친구들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이다. 조금 멋쩍긴 하겠지만 묻자. “당신이 보기에 내가 잘하는 것, 혹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묻기만 하면 된다. 농담 섞인 질문만 아니라면 이는 좋은 힌트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을 때의 기준은 스스로가 바라보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나에게 맞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몸에 맞는 옷 누구든 몸에 맞는 옷을 입어야 매무새도 살고 태가 나는 건 사실이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은 불편해서라도 오래 입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렇지만 요즘은 일에 있어서 과연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처럼 우리 몸에 꼭 맞는 것이 존재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옷을 몸에 맞추기보다는 몸을 옷에 맞추라는 군대의 우스개까진 들먹이지 않더라도, 몸에 맞는 옷을 찾아 나서기보다는 현재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더 소중하고도 시급한 일 아닐까.
이라크전 당시 종군기자였던 조선일보 강인선 기자의 『힐러리처럼 일하고 콘디처럼 승리하라』라는 책을 읽다 보면, 몸에 맞는 옷은 물론이거니와 반드시 화려한 옷, 비싼 옷만이 좋은 옷은 아니라는 생각도 여실해진다.
“세상에 ‘멋있는 직업’은 없다. 그 일을 ‘멋있게 만드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멋있어 보이는 일도 꼬질꼬질하게 하는 사람이 있고, 시시해 보이는 일도 반짝반짝 빛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아무도 관심 없던 직업인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일을 멋있게 해내는 사람이 등장하면 갑자기 ‘인기 직종’이 되는 경우가 흔하지 않던가. 직업이 사람을 멋있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직업을 멋있게 만든다.”
행복한 성공을 꿈꾸며 필자는 현재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해 꾸려나가고 있다. 아직은 규모도 작고 수익구조도 안정적이지 못한 탓에 늘 새로운 도전과 위험에 직면하곤 하지만, 그래도 섣불리 투자를 늘리거나 큰 모험을 서두르려는 생각은 없다. 어쩌면 이미 한 차례 사업을 도모하고 실패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한발 한발 내딛는 걸음이 더 조심스러운지도 모르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현재의 어느 정도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방해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스스로 행동의 범위와 폭을 조정하게 만드는 면도 없진 않은 것 같다.
이제 미뤄뒀던 질문에 답하자. 필자는 프로그래머이며 또 성공을 꿈꾸는 창업가이다. 그렇지만 늘 붙어 다니는 꼬리표 덕에 처음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마치 ‘FAQ’에 가까운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다. 가장 흔한 질문은 두 가지로 하나는 왜 그만두고 나왔냐는 것이고(앞에 조금은 빈정거리는 투의 ‘그 좋은 직장을’이란 말을 숨기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다른 하나는 그래서 후회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대개 사람들이 하는 질문은 거기서 거기인 탓에 이제는 잘 정리된 모범답안 하나쯤은 나올 법도 한데, 실은 아직까지도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늘 부담스럽다. 아마도 필자가 그 당시 가졌던 성공에 대한 포부와 기대에 비해 스스로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
필자의 꿈은 규모는 작지만 멋진 소프트웨어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일찌감치 창업에 성공해 모든 것을 다 얻은, LISP를 찬양하는 해커 출신 화가처럼 살기는 애당초 글렀지만 평생 좋아하는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고 성공한 창업가로서 회사를 일궈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다. 그 간절함 때문에 필자의 현재는 늘 진행형이며 필자의 내일은 언제나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될 것으로 믿는다. 어쩌면 그게 필자가 사람들의 상투적인 FAQ에 대해 그 흔한 모범답안 하나 마련해 놓지 않는 진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어김없이 가을이다. 어느덧 필자가 좋아하는, 바디감이 풍부한 잘 볶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맘껏 먹을 수 있는 계절이 왔다.
참고자료 1. 대니엘 길버트,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2. 다니엘 라핀, ‘부의 비밀’ 3.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 내 안의 강점 발견법’ 4. 강인선, ‘힐러리처럼 일하고 콘디처럼 승리하라’
개인적으로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을, 저자는 고민하고 결정했던 것 같다. 다만 나는 깊거나 길지는 않지만 양쪽을 조금씩 경험해 봤기 때문에 어느쪽이나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예상하고 있다. 그래서 어느쪽에 있어도 다른 쪽을 동경하게 될 것이라는 것도.
공감이 된 세가지 이야기 - 직업적으로 하는 일을 사랑하는 배우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이야기 - 예를 든 성공의 정의 - 멋있는 직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직업을 멋있게 만드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