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웨어] 서양미술사와 컴퓨터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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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컴퓨터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개인의 쓰임새에 따라 해석이 다르겠지만, 몸에 지니고 다니기 일보 직전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에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그 만큼은 삶의 일부가 됐다는 얘기다. 이렇듯 IT 기술이 너무 발달해 더 이상 어떤 새로움을 가져다줄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 컴퓨터의 시대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한국MS에서 기술 에반젤리스트로 근무하는 김영욱 씨로부터 한 통의 제보가 들어왔다. 칠순에 가까운 나이에도 강의를 하고, 현업 개발자나 익힐만한 실버라이트를 사용해 사이트를 구현하는 노(老) 교수님을 만났다고 했다. 인제대에 강연을 하러 갔다가 되려 실버라이트의 미래에 대한 고견을 듣고 왔다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인제대학교 의용공학과를 설립한 전종웅 교수였다. 학교가 위치한 경남 김해와 서울을 오간다는 말을 듣고 서둘러 연락을 했다. 마침 학기가 끝나 청파동 자택에 있었다. 인터뷰는 자택과 별도로 주차장 한 켠에 위치한 서재에서 이뤄졌다. 서재는 컴퓨터 역사를 전시한 박물관을 방불케 했다. 이미 절판된 LISP, Smalltalk 같은 전공서부터 Ajax, 실버라이트, 익스프레션 블렌드 같은 최신 웹 개발서, 게다가 생물학, 의학, 바이오인포매틱스까지 요사이 주목 받은 기술서가 빼곡히 꼽혀 있었다.  

그는 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보건의료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세상이 변한다고 생각했단다. “반도체에서 말하는 메모리나 의학에서 말하는 면역학도 모두 기억에 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0년대 초반만 해도 두 가지 모두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없었어요. 연세대 측을 설득해 최초의 의공학과가 설립됐죠.” 설립을 주도했지만 대학에 머무르진 않았다. 당시 금성통신과 함께 쌍벽을 이루던 오피씨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IBM, 현대, 삼성 같은 기업들에도 PC 장비를 공급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짐작됐다. 대화를 나누던 중 그가 국내에 IBM PC를 확산시킨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막은 이랬다. “PCB 아트워크로 설계한 IBM PC를 청계천의 한 업체에 맡겼는데 거기서 그걸 빼돌린 거죠. 범인을 잡긴 했죠. 요즘 같으면 천문학적 소송이 벌어졌을 텐데, 기술 확산에 관심이 많아 그냥 묵인했습니다.” 20년 이상 현장에 있다 보니 여기서 익힌 IT 기술과 보건의료학의 결합을 본격적으로 펼치고 싶었다. 결국 88년 인제대 행을 결심했다. 인제대는 백병원 산하에 의과대학이 있어 의용공학과 설립이 가능했다.    

학과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그가 고수하는 게 하나 있다. 매년 1학년 과목을 빼놓지 않고 개설한다. 바로 배워 써먹는 기술보다 발전 가능성이 있는 주제를 강의한다. 1학년 때 배운 기술이 졸업 때가 되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5년 전에 이미 바이오인포매틱스 강좌를 개설했다. 너무 이론에 치우친 건 아닌지  묻자, “바이오인포매틱스를 위한 엑셀, 자바, 펄 같은 구성으로 진행을 합니다. 이론과 함께 IT에 유용한 언어나 도구를 같이 배우니 학생들도 만족하는 수준입니다.” 지난 학기에는 1학년을 대상으로 포토샵을 강의했다. 포토샵이 유용하긴 하지만 ‘굳이 강의까지 필요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강의를 개설한 이유를 묻자, 디지이너 툴인 익스프레션 블렌드를 위한 선행과목이라고 했다. “서양미술사와 포토샵을 병행해서 강의안을 구성했습니다. 미래의 프로그래밍 툴은 사용법만 알아서는 쓸모가 없습니다. 그림을 이해하는 눈이 필요합니다. 서양미술사에 나오는 기법의 변화, 원근법 같은 미술기법들을 이해하지 못하면 깊게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요즘 보면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의 불협화음이 쟁점인데. 프로그래머들도 디자이너 역할을 하는 시대가 곧 올 거라고 봅니다.”

‘3C’를 갖춰라
변화(Change), 경쟁(Competition), 도전(Challenge)은 40년 이상 IT산업의 변천사를 지켜본 그가 후배들에게 주문하는 키워드다.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서가에 꼽힌 5~6년 사이에 출간된 책들이 증명해주는 듯했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할 정보라고 판단되면 아마존을 통해 직접 구입한다. 학과 설립 첫해인 88년에는 부산지역 최초로 학과 전용 네트워크 망도 구축했다. 미국 산호세에 위치한 코바스사에 찾아가 옴니넷을 직접 들여 왔다. 그가 말하는 3C의 철학적 기반은 복잡성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얼마나 복잡합니까. 같은 시간에 천 줄을 코딩하는 사람이랑 만 줄을 코딩하는 사람이 있듯이 코딩만 하는 업무는 줄어들 겁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관심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개발 관련 세미나를 본다고 했다. 신기술이라 소개하지만 철학만 달라졌을 뿐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 지금의 학과 명성을 만든 것 같았다. 해마다 3~4월에 열리는 의료박람회는 학생들의 필수코스로 자리 잡았다.

인간을 위한 컴퓨팅의 미래
일상에서 컴퓨터 사용의 빈도가 늘어나면서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건 끝났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그가 보기엔 진정한 컴퓨터의 시대는 이제부터라고 주장한다. “수백명이 처리할 작업을 PC 한 대로 처리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일반인이 스스로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쓰는 시대가 와야 비로소 컴퓨터 시대에 진입한 겁니다. 최근 MIT나 하버드의 오픈코스웨어를 보며 컴퓨터 시대에 서서히 진입했다는 걸 감지합니다. 누구나 고급정보를 공유해야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만든다”며 그도 학생들과 수천개에 달하는 강의 자료를 공유한다. 건축방식이 바뀌었듯이 모든 게 달라졌다. 일반인이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쓰는 날이 오면, 컴퓨터공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요즘 그가 던진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