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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Pachinko)' 시즌1의 여덟 편 감상 소감 본문
이 TV쇼/드라마를 보려고 AppleTV+ 3개월 무료체험을 신청까지 했는데, 4월 29일 8화 전 시즌이 끝났다. 시즌1을 본 소감을 적어 본다.
1. 일제 시대에 우리 민족이 처한 상황에 대한 묘사가 크게 다가왔다
일제 시대에 우리 민족이 겪은 아픔과 고난에 대한 여러 영화, 소설, 드라마를 봤지만, 이제껏 당시 우리 민족이 겪었을 박탈감과 허망함 그리고 서글픔을 공감하게 된 것은 이 드라마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동안 일본의 만행을 묘사하여 보는 이들이 분노하거나 슬퍼하게 한 작품이 대다수였다면, 이 드라마는 그 당시 분노와 슬픔을 꾹 참고 살아가는 우리 민족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느꼈을 억눌린 감정에 공감하게 했다.
수탈 당하고도 매번 고개 숙여야 하는 일본 순사에 대해 한번 린치를 가하고 싶다는 서글픈 충동, 타국으로 떠나는 딸에게 두 홉의 양이라도 우리나라 쌀을 맛보여주고 싶은 간절함, 이국 땅의 착취 노동자로서 술집이나 집에서만이라도 자신이 바닥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등 그런 것이 너무 선명하게 다가왔다.
2. 영상미와 음악이 뛰어나다
코고나다와 저스틴 전, 두 명의 director가 에피소드를 나누어 연출을 맡았는데, 코고나다 연출의 1, 2, 3, 7화 에피소드는 자연을 배경으로 한 풀 샷 중심의 영상이 뛰어나 보이고, 저스틴 전 연출의 4, 5, 6, 8화 에피소드는 핸드헬드 중심의 다이나믹한 카메라 영상이 놀랍다. 음악도 드라마 내용의 감정을 고조시키기에 너무 훌륭하다.
3. 교차 편집의 미학이 느껴졌다 (원작 소설을 보지 않은 관점에서)
4세대에 걸친 이민자 이야기이고 시즌1에서 선자와 솔로몬의 이야기가 동시에 전개되다 보니 서로의 이야기가 교차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단순히 두 이야기가 별도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각 세대 이야기에서의 감정이 조화롭게 매칭되도록 매우 잘 편집되어 있어 놀랐다. 예를 들면 4화에서 단순히 할머니의 이야기로만 솔로몬이 '하지 마시라' 얘기하게 되었다면 시청자의 공감이 덜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중간에 1931년 당시 여가수와 배를 탄 광부들의 사연이 그 사이에 들어가면서 그 공감의 감정이 증폭되는 것을 느꼈다. 조금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영화 '대부' 2편의 편집 스타일이 떠오르기도 했다.
4.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의 열연이 놀랍다
윤여정이나 이민호 만큼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의 연기도 놀라웠다. 십대 선자역의 김민하, 선자 어머니 양진역의 정인지, 요셉 역의 한준우, 송씨역의 주영호 등 많은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5. 원작을 넘어서려는 시도들이 엿보인다
7화에서 한수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원작에 없었던 내용으로 알고 있는데, 1923년 관동대지진 중 조선인 대학살을 배경으로 해서 또 다른 관점의 깊은 스토리를 만들었다. 8화의 마지막에는 주인공 선자와 비슷하게 어린 시절 일본으로 이주하게 된 재일 할머니들을 인터뷰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원작 소설과 드라마의 내용이 더욱 무겁고 진지하게 다가오도록 한 기획이라 생각된다.
6. 자세하지 않은 묘사와 설명이 아쉽다 (원작 소설을 보지 않은 관점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내용을 보면 드라마 내 묘사 자체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OTT TV쇼인 만큼 그들을 위해 상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유투브에서 외국인들의 에피소드 별 리뷰를 보면 간혹 자세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보이며, 어떤 경우에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잘 모를 수 있겠다 싶은 경우도 있었다.
일제시대 일본의 만행을 모르면 일본 순사들을 왜 그렇게 증오하게 되었는지 잘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고, 일제의 산미증식계획을 모르면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쌀을 왜 돈 주고도 마음대로 못 사는지 알 수 없으며, 역사적 사실을 모르면 복희나 배를 탄 사람들이 좋은 일자리라고 해서 가는 만주 공장과 광산이 사실은 어떤 곳이었는지 알 수 없다. 7화에서 관동대지진 시기에 조선인 대학살의 내용을 다루고 있으나 당시 조선인에 대한 참사를 일일히 다 묘사하지는 않았고, 그 사건의 발생 원인이 일본인들의 막연한 불안감이라기 보다는 일본의 정치인들이 당시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수단의 결과였다는 주장도 소개되지는 않았다.
자세한 묘사의 제약은 AppleTV+라는 플랫폼의 특징과 15세 이상 관람가라는 등급 등이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싶다.
7. 나중에 이야기를 본 뒤에야 이해될 것 같은 단서가 없는 내용들이 많다 (원작 소설을 보지 않은 관점에서)
영상을 에피소드 순서대로 보면 중간중간 이해가 안되는 내용들이 다수 나온다. 1화에서 솔로몬이 오랜만에 집에 와서 보게 되는 원앙 목각품이나 하이츄는 이후 에피소드에서 그 의미를 알 수 있게 되며, 원작을 모르는 사람은 1화부터 나오는 요시이 마모루가 누구이며 5화 중 요시와라에서 만난 가족은 누구인지를 알 수 없다. 이 외에도 당장 의미를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우뚱 하게 하지만 그 의미가 나중에 밝혀져 거꾸로 찾아 보면서 의미를 파악하게 되는 경우도 많으며, 원작을 모르는 입장에서는 다음 시즌 내용에 더 밝혀지는 것인지 이번 시즌에서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8. 소소하지만 아쉬운 점들
(1) 방언과 외국어
선자의 부모로 나온 이대호, 정인지는 제대로 된 부산 사투리를 사용하는 반면, 부산 사람으로 등장하는 몇몇 배우들의 사투리는 어색했다. 주인공인 윤여정도 이후에는 많이 자연스러워졌으나 1화에서는 부산 사투리가 어색하게 보였다. 7화에서는 정인웅과 이민호가 제주 사투리를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제주 사투리를 몰라 어색함을 못 느꼈으나 제주 출신 분들이 아주 자연스럽지는 않았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
이 드라마에서 한국어, 영어, 일본어의 3개 국어가 동시에 사용되기 때문에 몇몇 배우는 다국어를 해야 했다. 하지만 솔로몬 역의 진하의 경우 3개 국어 중 한국어의 발음이 가장 어색했고(자이니치라는 배역의 특성을 고려하면 한국어 보다 일본어를 더 잘하는 것이 맞겠지만, 핵심적인 주요 장면에서 솔로몬이 한국어로 이야기 해야 하므로(4화가 그 예) 한국어 발음도 중요했다고 본다), 이민호의 경우 7화에서 일본어와 영어를 잘 해야 그의 영특함이 도드라졌을텐데 일본어와 영어 모두 자연스럽지는 않았기에 공감이 덜 되었다(당시 시대를 생각하면 영어 발음이 유창할리 만무했겠지만 문제는 배역에서 영어 대사가 간단하고 많지 않다는 것이다).
(2) 로케이션
처음 1화부터 보았을 때 초가집은 대단히 사실적이라고 생각한 반면 부산 영도의 바다가 파도도 없이 너무 잔잔한 것이 이상했다(나중에 찾아보니 캐나다의 모처를 이용한 것이라고 했다). 노년 선자의 오사카 집이나 땅을 팔지 않는 할머니의 집, 솔로몬의 어린 시절 학교 등의 일본 지역은 일본 지역 같지 않고 한국 지역 같았다(역시나 나중에 찾아보니 일본 현지에서 촬영할 수 없었다고 한다).
1930년대 부산과 1980년대 일본을 재현하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한 면이 보이긴 하지만, 아니다 싶은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신경이 쓰였다.
(3) 일본어 대사에 대한 자막
1989년 스토리에서는 일본어가 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일본어에 대한 한국어 자막을 보면 1:1로 대응이 될 수 있는 대사임에도 마치 의역을 하듯이 의미 간 거리가 멀어지는 듯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추측컨데, 일본어에 대한 한글 자막의 경우 일본어를 영어로 번역한 자막을 한국어로 다시 번역한 것이 아닌가 싶다.
관련글: 소설 '파친코(Pachinko)'를 읽은 소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