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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비트 컴퓨터를 다시 만지작 거리는 이유

wehong 2022. 10. 27. 19:47

2015년 직장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었을 때 PS4를 구매해서 오랜 만에 콘솔 게임을 접하게 되었고, 그 이후 언젠가 부터 몇 년 동안은 슈퍼패미컴, 메가드라이브, PC 엔진 같은 레트로 콘솔과 해당 게임들을 구매하여 플레이 하곤 했다. 그런 레트로 콘솔들이 현역이었던 당시에 그 콘솔들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많이 접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사실 그 방면에 아련한 추억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과거의 유명했던 게임이라는 존재에 흥미를 느끼게 되고 사람들이 향유하는 레트로 게이밍 문화를 인상적으로 보게 되어 그런 것들을 가까이 했던 것 같다. 어쩌면 이 시대의 아저씨들이 느끼고 싶어하는 향수 같은 것을 '게임'이라는 장르에서 찾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얼마 전 부터 8비트 컴퓨터들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향수를 가지고 있는 레트로 기기는 게임 콘솔이라기 보다는 8비트 컴퓨터였을 것이다.

 

'8비트 컴퓨터를 찾아보자'라고 명시적으로 마음을 갖은 것은 아니지만, 마음 속에 불씨가 심어진 첫 시작은 아마도 작년 말 제주도의 '제로하나 컴퓨터 박물관'였지 않을까 싶다. 거기에는 IBM PC 호환 계열 16비트 컴퓨터들과 Macintosh들이 즐비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8비트 컴퓨터들이었다. 8비트 컴퓨터에 기본적인 BASIC 명령어들을 입력해서 예상대로 동작하는 것을 지켜봤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다가 올해 초 Apple II 컴퓨터의 에뮬레이터인 'Apple2ix'를 빌드하고 사용해 보다가 예전에 구매 후 잘 켜지 않고 보유하고만 있었던 'Apple IIc'를 구동시켜 보게 되었다. 옛 생각에 중고품을 구매했었다가 그동안 실기가 무겁고 불편해서 사용하지 않고 넣어 두고 있던 것인데, 에뮬레이터 대신 실기를 구동해 보고 싶은 생각이 났다. 그렇게 해서 하게 된 Apple IIc 실기 사용은 재미있는 경험이었을 뿐만 아니라 레트로 게임 보다 훨씬 더 생생한 과거의 추억을 선사해 줬다. 당시 Apple II+ 호환기기를 가지고 있던 때 재미있게 플레이 했던 'Snake Byte'를 여전히 재미있게 플레이 할 수 있었다.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하는 느낌도 좋았지만 현세대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Floppy Emu' 등의 보조 기기들을 구매하고, Apple II의 컴포지트 화면을 더 좋게 볼 수 있는 방송용 모니터 소형 디스플레이도 구매하면서, 에뮬레이터나 MiSTer 기기에서 느낄 수 없었던 과거 컴퓨터의 향수를 누릴 수 있었다. 관련된 책들이나 문서들도 찾아보고 더 나은 화면 출력 방식이나 화면 출력 컨버터들을 살펴 보면서 점점 더 방면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릴 적 보유하고 있지 않았지만 한동안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MSX 컴퓨터 쪽에도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결국 실기 중 하나인 'X-II'까지 구매하게 되었다. MSX 기기를 가진 적이 없지만 사촌동생의 IQ-1000을 통해 MSX에 대해서도 추억 같은 것이 있었고 어렸을 적 잡지 등을 통해 간접 경험을 했었다.

 

다시 접하게 된 MSX 환경은 Apple II 환경 만큼이나 추억을 되살려줬다. 전원과 함께 자동으로 시작하는 BASIC, 숫자키 '2'번과 SHIFT 키로 입력하는 '"'키, '?' 문자로 대치되는 BASIC의 PRINT문 등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무엇보다 Apple II와 MSX에서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8비트 컴퓨터의 가능성과 제약점은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BASIC 프로그램 다시 입력하고 분석해 보면서, 어렸을 적 열심히 공부했던 8비트 프로그래밍의 추억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사실 MSX의 FPGA 구현체로 OCMC(One Chip MSX Clone)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IQ 3000 큐티'와 MiSTer의 MSX 코어는 예전부터 사용하고 있었으나 과거 기기라는 느낌은 아니었다. IQ 3000 큐티를 잘 활용해 보기 위해 15kHz SCART 케이블이나 31kHz VGA 케이블을 만들기도 했으나, 결정적으로 한 BASIC 프로그램의 실행결과가 OCMC 계열과 실기에서 다르게 나오면서(#1, #2, #3) 결국 실기 사용을 선호하게 되었다(이것의 원인은 아직 정확히 모르겠다. 구현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X-II' 보다 좀 더 강력한 MSX2+ 이상의 실기를 보유하고 싶은 생각에 추가로 MSX 기기 구매를 생각했다. MSX turboR 기기는 너무 비싸서 제외했고 DIY 프로젝트인 'Omega MSX'는 부품수급과 조립에 대한 부담 때문에 제외하여, 결국 일본 옥션에서 처음으로 경매 대행 서비스를 이용해 MSX2+ 기기인 'FS-A1WSX'를 구매했다. 몇몇 문제도 있지만 일단 X-II와 함께 이 기기를 실기로 사용하고 있다.

 

8비트 기기를 지금 와서 다시 보면, 과거 어렸을 적에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도 하고 지금은 다가서기 덜 겁나는 기술적 장벽도 가끔은 보인다. 기기 분해도 해보고 끊어진 벨트 같은 것은 교체도 해보고 플로피 디스크도 만들어 보았다. 회로도를 보고 구성품들을 약간이나마 이해도 해보고 FPGA HDL 자료를 보고 구현 방법도 슬쩍 구경해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하드웨어는 어렵고 소프트웨어 쪽도 실력이 모자람을 느낀다. 반면, 오랜 시간 8비트 컴퓨터 기기를 사용하면서 자가 정비도 하는 고수분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 컴퓨터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들을 방문해 보면, 여러 장비를 보유하시면서 다양한 지식을 겸비하시고 기가 막힌 방법을 사용해 이들을 사용하고 계시는 분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Apple II와 MSX 기기를 다시 사용하면서 깨닫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레트로 게임 콘솔 보다는 레트로 컴퓨터 쪽이 과거에 대한 향수를 더 느낄 수 있는 대상이라는 점이다. 과거 슈퍼패미컴이나 게임보이 같은 콘솔을 보유했고 PC 엔진, 게임기어, 새턴, 드림캐스트 같은 콘솔은 간접 사용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컴퓨터들에 대한 경험과 추억 만큼은 나에게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고 있는 것은, 이것들을 가지고 현 시점에서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해 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단순히 기기들 구동해 과거의 향수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것들로 좀더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것들을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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